천문학자의 책상

천문학자의 책상에 놓인 과학 계산기, 일반 계산기와 뭐가 다를까?

트래블허즈번드 2025. 7. 6. 08:00

누구나 한 번쯤 계산기를 사용해봤을 것이다.
마트에서 물건 값을 더할 때 쓰는 일반 계산기부터, 공학 수학 문제를 풀 때 사용하는 과학 계산기까지.
하지만 천문학자의 책상 위에 놓인 과학 계산기는 단순히 숫자를 더하거나 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계산기는 우주의 좌표를 바꾸고, 빛의 속도를 나누며, 항성의 질량을 계산하는 도구다.
이번 글에서는 천문학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과학 계산기가 일반 계산기와 어떤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지, 그리고 그 계산기가 왜 천문학자라는 직업의 핵심 도구 중 하나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노트북과 계산기가 있는 사진

 

일반 계산기의 한계 : +, −, ×, ÷ 그리고 ‘끝’

일반 계산기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기능으로 구성된다:

  • 사칙연산: +, −, ×, ÷
  • % (백분율 계산)
  • M+, M− (메모리 기능)
  • 간단한 소수점 처리
  • 12자리 혹은 14자리 숫자 표시

이 계산기는 일상적 수치 계산에는 매우 유용하지만, 천문학에서 다뤄지는 수치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 = 149,597,870.7 km
빛의 속도 = 299,792 km/s

 

이 두 값을 나눠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구하려면, 단순 나눗셈이 아닌 단위 변환, 소수점 유지, 지수 표기 기능이 필수다.

일반 계산기로는 숫자를 줄이기 위해 억, 조 단위를 머릿속으로 전환해야 하며, 지수 표기(10ⁿ) 계산은 불가능에 가깝다.

천문학은 작게는 0.0000001, 크게는 1,000,000,000,000,000 이상의 수치를 다룬다.
일반 계산기의 12자리 디스플레이는 우주의 수치를 받아들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과학 계산기의 핵심 기능은 ‘우주 단위’를 다룰 수 있다는 점

과학 계산기는 이공계 학문에서 필요한 다양한 연산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 중 천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몇 가지 소개하자.

 1) 지수 표기 (Exponential, ENG)

천문학에서 수치는 너무 작거나 너무 크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의 크기 ≈ 5 × 10⁻¹¹ m
지구에서 가장 먼 은하까지 거리 ≈ 1.3 × 10¹⁰ 광년

과학 계산기는 이러한 값을 정확한 지수 표기로 입력하고 계산할 수 있다. 이는 천문 단위(AU), 광년, 파섹 등을 변환하는 데 필수적이다.

 2) 삼각함수 계산 (SIN, COS, TAN 등)

천문학에서 천체의 고도, 방위각, **좌표 변환(적경 ↔ 고도)**을 위해 삼각함수 계산이 매우 자주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별의 고도(Altitude)를 구하기 위해 
고도 = sin⁻¹(sin φ × sin δ + cos φ × cos δ × cos H)

이 계산은 과학 계산기 없이 수행하기 어렵다.

 3) 단위 변환 및 각도 모드 전환 (DEG ↔ RAD ↔ GRAD)

천문학에서는 도(degree)뿐 아니라 라디안(radian) 단위도 자주 사용된다. 특히 회전각, 궤도 계산, 시뮬레이션 분석에는 라디안이 기본이다.

과학 계산기는 이 단위들을 한 번의 버튼 클릭으로 전환할 수 있어 수치 오류 없이 계산을 진행할 수 있다.

 4) 로그, 지수, 루트 연산

항성의 밝기 계산에는 **로그(log)**가 필수다. 예를 들어,

밝기 차이 = 2.5 × log(밝기1 / 밝기2)

행성의 중력, 궤도 속도 등을 계산할 때도 루트(√) 연산은 매 단계에서 사용된다.

일반 계산기로는 불가능하지만, 과학 계산기는 이 모든 연산을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이 실제로 계산하는 5가지 수치

천문학자는 데이터 분석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계산기를 두드리며 수치를 추정하고, 논리적 타당성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1) 빛의 도달 시간 계산

예시 :

태양 → 목성 거리 = 약 778,000,000 km
빛의 속도 = 299,792 km/s
계산기 입력: 778000000 ÷ 299792 ≈ 2594.3초 ≈ 약 43분

 2) 별의 절대등급 계산

공식: M = m − 5 (log d − 1) (m: 겉보기 등급, d: 거리(pc))

이 계산에서 로그 함수와 괄호 계산이 필수다.

 3) 회전 주기 계산

예시:

어떤 별의 회전 속도 v = 2.5 km/s, 반지름 R = 700,000 km
주기 = 2πR / v → 이 계산은 파이, 곱셈, 나눗셈, 지수까지 포함된 복합 계산이다.

 4) 각도 변환

시간 단위로 된 적경(예: 14h 15m 30s)을 도(degree) 단위로 변환 :
RA(degree) = (14 + 15/60 + 30/3600) × 15 → 소수점, 괄호, 곱셈을 함께 다루는 계산

 5) 자외선/적외선 파장 변환

파장과 주파수 관계: c = λν (빛의 속도 c = 3.0 × 10⁸ m/s) → ν = c / λ

과학 계산기 없이는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

 

실제 천문학자가 사용하는 계산기 모델은?

천문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계산기 모델은 다음과 같다.

  모델명 주요 기능 특징
1 Casio fx-991EX 삼각함수, 지수, 행렬, 통계, QR코드 결과 공유 입문자부터 석·박사까지 사용
2 TI-36X Pro 공학·천문계 전용, 고속 계산 복잡한 방정식 처리에 최적화
3 HP 35s RPN 지원, 프로그램 저장 가능 계산 흐름이 길 때 유리
4 Casio fx-5800P 프로그래밍 가능, 664함수 내장 복잡한 반복계산 자동화 가능

천문학자는 계산기 하나를 마치 필기구처럼 사용하며, 책상 위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장비 중 하나로 여긴다.

 

천문학자의 계산 습관이 ‘사고 구조’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계산기의 기능보다 '그 도구를 통해 어떤 사고 방식을 익히느냐' 다. 천문학자는 모든 수치를 상대적 단위로 환산한다.

  • 거리 → 광년, 파섹
  • 속도 → 빛의 속도 기준
  • 시간 → 상대적 주기 기준
  • 밝기 → 로그 스케일

이 사고 구조를 계산기를 통해 체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숫자 → 개념 → 우주 구조로 사고가 확장된다.

즉, 계산기는 단순히 정답을 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주의 크기와 질서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도구다.

 

[계산기는 천문학자의 언어다]

천문학자의 책상 위 계산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별과 인간 사이의 번역기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를 숫자로 바꾸는 마법 도구다.

일반 계산기가 ‘결과’를 말한다면, 과학 계산기는 ‘과정’을 말한다.
그 과정 속에서 천문학자는 수치를 넘어선 감각을 기르고, 별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낸다.

그리고 오늘 밤도 천문학자는 책상 위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하나의 숫자에서 우주의 한 조각을 꺼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