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의 책상

천문학자의 책상 속 메모장엔 어떤 별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

트래블허즈번드 2025. 7. 6. 23:00

천문학자의 책상 위에는 대개 고성능 노트북, 논문 프린트, 관측 도구가 정돈돼 있다. 하지만 그 사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메모장 한 권이 있다.
그 메모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순 기록용 수첩’이 아니다. 거기엔 수치로 다 표현되지 않는 별의 성질, 관측 중 마주한 우주의 감정, 가끔은 과학적 상상과 개인의 추억이 함께 적혀 있다.
이 글에서는 천문학자의 책상 속 메모장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그 메모가 왜 그들에게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그 기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사례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겠다.

 

책상 위치 노트북, 휴대폰, 메모장이 있는 사진

 

숫자와 감성이 공존하는 필기 공간

천문학자의 메모장은 단순한 과학 노트가 아니다. 거기엔 좌표와 수식, 광도 수치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관측자의 감정과 질문이 함께 적혀 있다.

천문학과 K 교수의 메모장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수년간 관측할 때마다 작은 Moleskine 노트에 손글씨로 날짜, 위치, 대상, 날씨, 관측 조건을 기록하고 있었다.

 

예시:

2024.11.08 / 고성천문대 / 오리온자리 관측
시상 약간 불안정. 고도 45도. Betelgeuse 광도 평소보다 낮아 보임?
빛이 다르게 느껴졌다. 감정 때문인가, 대기 때문인가?

 

이 짧은 메모에는 과학적 관찰, 정량적 수치, 그리고 내면의 정서적 질문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이성으로 보는’ 사람이지만, 별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메모로 좁혀 나간다.

 

별을 보는 자리에서 태어난 문장들

천문학자의 메모는 실험 노트와 다르다.
실험 노트가 ‘재현 가능한 과정을 위한 기록’이라면, 천문 메모는 ‘재현 불가능한 순간을 붙잡기 위한 시도’다.

한 아마추어 천문가이자 논문 공동저자인 J 연구원은 직접 만든 천체 관측용 메모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2023.12.13 / 쌍둥이자리 유성우
22:04 - 첫 유성 관측 (SE 방향, 40도 각도)
22:38 - 유성 떨어질 때 고요함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다.
“소리 없는 빛”이라는 말을 처음 떠올림.

 

그는 유성의 수, 방향, 지속 시간을 숫자로 적으면서도 그 순간 느낀 감각을 짧은 시처럼 기록해두었다.

천문학자의 메모에는 별의 움직임뿐 아니라, 그 순간의 인간적 반응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그 메모는 과학 기록을 넘어서 하늘과 감정 사이의 접점이 된다.

 

데이터보다 먼저 오는 ‘질문’이 적힌다

많은 천문학자의 메모는 정답이 아닌 질문으로 시작된다.
별을 관측하기 전, 또는 분석 중간에 떠오른 의문을 메모장 가장 위에 ‘질문형 문장’으로 적어두는 경우가 많다.

천문연구소의 한 박사과정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논문은 해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메모장은 내가 아직 못 푼 질문을 저장하는 곳이에요."

 

그의 메모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 2024.07.03
HR 8799의 행성 D 궤도 변화율 → 예측보다 미세하게 빠른가?
적외선 파장대에서 이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면,
행성 대기 조성 차이 때문일 가능성?
관련 논문: Marois et al. 2008 재검토 필요

 

이 메모는 단순한 생각 정리가 아니라 연구의 출발점이자, 미래 논문의 씨앗이었다.

천문학자는 메모장에 데이터를 적기보다 먼저, 생각과 질문을 적는다.
왜냐하면 관측은 ‘정보 수집’이지만, 연구는 ‘의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메모장 속의 별 : 이름, 이야기, 상징

천문학자의 메모에는 단순히 ‘HD209458’처럼 코드로만 별을 적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만의 이름이나 기억을 붙여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한 천문학자는 베텔게우스를 이렇게 썼다.

Betelgeuse (나에게 처음 우주를 느끼게 해준 별)
붉은색은 항상 따뜻함보다 죽음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이 별이 사라질 날을 두려워하면서도,
언젠가 나도 그 빛처럼 붉게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 문장은 논문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지만, 그 메모를 본 순간 누구든 별을 ‘이름 없는 천체’가 아니라 ‘삶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메모장 속 별은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다.

 

천문학자의 메모는 결국 자신을 향한 기록이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오랜 시간 자신의 메모를 쌓아간다. 그 메모는 남을 위한 것도, 과학 공동체를 위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왜 별을 바라보는지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어떤 박사는 박사과정 시절부터 쓴 메모장을 지금까지 11권이나 쌓아두었다.
첫 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우주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주 앞에서 내가 왜 작게 느껴지는지를 알고 싶다.”

 

이 문장에는 과학자가 아닌 인간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와 공유되는 감정이다.

 

[메모장이 기록하는 것은 ‘별’이 아니라 ‘나’]

천문학자의 책상 속 메모장에는 좌표, 수치, 공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 별을 처음 본 날의 공기,
  • 데이터가 엇갈렸을 때의 불안,
  • 예상치 못한 유성 한 줄기의 감동,
  • 그리고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

들이 함께 들어 있다.

 

천문학자는 매일 별을 보고, 그걸 논문으로 쓰지만, 메모장에는 그 별을 보는 ‘자신’을 기록한다.

그리고 언젠가, 논문은 잊혀질지 몰라도 그 메모 한 장이 누군가에게 ‘별을 다시 보게 만드는’ 순간을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