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천문학자의 책상 위, 별 하나의 이름을 짓는 일

트래블허즈번드 2025. 7. 23. 20:00

별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어떤 별은 그냥 숫자로 불리고, 어떤 별은 시리우스처럼 이름이 있다.
그렇다면 별의 이름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
별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단지 명명(naming)이 아니다. 그건 하늘의 한 조각을 인간의 언어로 붙잡는 행위이며, 과학과 문화, 감정이 만나는 경계선이다.
이 글에서는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천체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 국제적 규칙과 제한, 그리고 이름 뒤에 숨은 이야기까지 구체적이고 감성적으로 풀어본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자리가 보이는 사진

 

별의 이름, 숫자로만 불려도 되는 걸까?

천문학에서 별은 대부분 좌표와 숫자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시리우스조차도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HD 48915, HIP 32349 등으로 불린다.

이 숫자는 다음과 같은 카탈로그에서 유래한다:

  • HD: Henry Draper Catalogue
  • HIP: Hipparcos Catalogue
  • BD: Bonner Durchmusterung
  • 2MASS: Two Micron All Sky Survey

하지만 이렇게 숫자로만 불리기엔, 어떤 별들은 너무 특별하다.

천문학자는 그 별이 가진 이야기와 의미를 하나의 고유 이름에 담고 싶어 한다.

 

별의 공식 이름은 누가 정할까?

별이나 행성에 이름을 붙이는 권한은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이 갖고 있다.

IAU는 1919년에 설립된 국제 기구로, 전 세계 천문학자들의 학술 협력과 규칙 정립을 담당한다.

<IAU의 명명 규칙>

  • 이미 존재하는 전통적 이름은 그대로 유지 (예: Vega, Betelgeuse)
  • 새로운 이름은 대부분 숫자/카탈로그 기반 (예: TOI-700d)
  • 공식 명칭 제안은 해당 천체를 연구한 과학자 또는 IAU 내 위원회가 결정
  • 대중 참여 프로젝트로 일반인이 이름을 제안할 수도 있음

예를 들어, 2015년 IAU는 전 세계인이 참여한 NameExoWorlds 캠페인을 통해 외계행성에 정식 이름을 붙였다.

  • HD 209458 b → Osiris
  • 51 Pegasi b → Dimidium

이처럼, 천문학자의 책상 위에서 별 하나가 발견되면 그 별은 조용히 세계로 나아가 공식 이름을 기다리게 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기억이다

별의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그 별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그 별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천문학자에게 이름이란?>

  • 자신의 연구의 증거
  • 한밤중, 고요한 관측의 흔적
  •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좌표 이상의 연결고리
  • 감정, 시간, 실패, 기쁨의 상징

예를 들어, 한 천문학자는 자신이 10년 넘게 추적하던 외계행성계에 가족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은 제안을 제출했다.
비록 공식 등록은 안 됐지만, 그는 “그 별은 내게 언제나 'Mira'였다”고 말했다.

 

상업적 별 이름 판매, 과학적으로 인정될까?

종종 ‘별 이름을 사세요’라는 광고를 본 적 있을 거다. 몇 만 원만 내면 별 하나에 내 이름을 붙여준다는 서비스 말이다.

하지만 이건 공식적 이름이 아니다.

<주의해야 할 점>

  • IAU는 상업적 명명 서비스를 인정하지 않음.
  • 구매한 이름은 사적인 문서에만 존재하며, 실제 논문이나 관측 데이터, 천문학계에서는 사용되지 않음.
  • 별을 소유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함.

이와 달리, 천문학자는 과학적 기여공식 절차를 통해 진짜 이름을 얻는다.

 

이름을 붙이는 기준과 제한은?

IAU는 명명 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기준 설명
언어적 중립성 특정 언어나 국가 편향 없는 이름 사용 권장
종교/정치적 중립 신화 기반은 허용되나 종교·정치 인물은 금지
길이 제한 일반적으로 16자 이내
명확한 발음 국제적 사용을 고려해 쉽게 발음되는 이름 권장
중복 금지 기존 천체와 겹치는 이름은 등록 불가
 

예를 들어, 2019년 NameExoWorlds 캠페인에서는 한국에서 제안한 이름으로 외계행성 HD 117618 b“Basan”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고대 한국의 사슴 별자리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과학과 문화가 함께 반영된 훌륭한 사례다.

 

천문학자의 책상 위,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

한 천문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름을 짓는 순간, 그 별은 내 논문 속 좌표가 아니라
하늘 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천문학자의 책상 위에는 종종 무명의 번호가 적힌 관측 리스트가 있다.
그는 별의 밝기와 위치, 분광 데이터, 공전 궤도를 보며 그 천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낸다.

그 순간, 그 별은 'HD 217014 b'가 아닌 '51 Pegasi b'가 되고, 나아가 ‘Dimidium’이라는 정체성을 얻게 된다.

 

당신도 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직접 발견한 천체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이름 짓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 방법>

  • IAU 공식 웹사이트에서 진행되는 명명 공모전 확인
  • 시민 과학 플랫폼(Zooniverse 등)에서 데이터 분석 참여
  • 천문 동호회나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동 제안 가능

또한, 아마추어 천문학자들도 소행성이나 혜성을 발견하면 자신의 이름을 붙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예>

  • 소행성 13241 Biyo → 필리핀 과학교사 이름에서 유래
  • 혜성 Hale-Bopp → 발견자 두 명의 성에서 이름화

하늘은 넓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이름을 붙일 기회는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이름은 인간이 우주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흔적]

천문학자는 오늘도 새로운 별을 바라본다. 그 별은 아직 이름이 없다. 좌표와 스펙트럼, 주기 데이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천문학자의 책상 위에서 그 별에 이름이 붙는 순간, 그 별은 인간과 연결된 존재가 된다.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그건 기억이고, 기록이고, 유산이다.

별에게 이름을 준다는 것은 우주에 질문을 남기고, 응답을 기다리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이름이 다른 누군가의 밤하늘이 될 수도 있다.

 

[별의 이름이 갖는 과학적·감성적 의미]

항목 설명
명명 주체 국제천문연맹(IAU) 공식 지정
조건 중립성, 발음, 중복 피하기 등
종류 전통 이름, 숫자식 이름, 공모 이름 등
역할 과학적 식별, 정서적 연결, 문화적 가치
주의사항 상업적 판매 이름은 과학적 효력 없음